AI 리서치2026년 10월 2일5분 읽기

AI 시대, 끝까지 살아남는 사고의 근육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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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Y KIM

이매진댓 AI 리서치 - Editor in Chief

AI 시대, 끝까지 살아남는 사고의 근육에 관하여

요즘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계십니까. 아침에 일어나 컴퓨터를 켜고, 퇴근하거나 잠자리에 들 때까지 우리가 AI를 얼마나 많이 쓰는지 가만히 돌이켜보면 조금 섬뜩할 때가 있습니다. 저 역시 완전히 그렇습니다.

요즘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계십니까. 아침에 일어나 컴퓨터를 켜고, 퇴근하거나 잠자리에 들 때까지 우리가 AI를 얼마나 많이 쓰는지 가만히 돌이켜보면 조금 섬뜩할 때가 있습니다. 저 역시 완전히 그렇습니다.

무언가 모르는 개념이 나오면 예전처럼 검색창을 뒤적이지 않습니다. 곧바로 AI 창을 열어 질문을 던집니다. 회사에서 기획서나 보고서 초안을 잡아야 할 때도 백지상태에서 머리를 쥐어짜는 대신 프롬프트부터 입력합니다. 마케팅 문구가 막힐 때도, 글의 서두가 풀리지 않을 때도, 사업 아이디어를 정리할 때도 일단 켜둡니다.

심지어 책이나 긴 리포트를 읽다가 문장이 조금만 길어지면 마우스로 긁어서 복사한 뒤 이렇게 입력하죠.

"핵심 내용 세 줄로 요약해줘."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편해졌습니다. 과거에는 반나절, 꼬박 하루가 걸리던 일들이 단 몇 분 만에 화면 위에 정리되어 쏟아집니다. 생산성이라는 단어로 보면 인류 역사상 그 어떤 도구보다 눈부신 효율을 우리에게 쥐여준 셈입니다.

그런데 문득, 컴퓨터 화면을 탁 덮는 순간 형용하기 힘든 이상한 공허감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분명 오늘 하루 종일 쉴 새 없이 바빴습니다. 손가락을 움직여 문서를 수십 장 만들어냈고, 수많은 웹페이지와 텍스트를 검토했으며, 클라이언트나 팀원들에게 보낼 메일도 수려한 문장으로 다듬어 발송했습니다. 겉으로 보면 엄청난 분량의 업무를 처리한 날입니다.

하지만 조용한 방 안에서 가만히 자문해 봅니다.

"오늘 내가 머릿속으로 진짜 무슨 생각을 깊게 했지?"

이 질문에 선뜻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손끝을 스쳐 지나간 결과물은 컴퓨터 폴더 안에 차곡차곡 쌓여 있는데, 이상하게도 제 뇌 안에는 아무런 지적 잔상이 남아있지 않은 겁니다. 모든 지식과 논리가 제 머리를 관통해서 스며든 게 아니라, 화면 위에서 매끄럽게 조합된 뒤 모니터 밖으로 증발해버린 것 같은 기분입니다.

최근에 제가 오래전부터 스크랩해 두고 틈틈이 다시 읽던 롱블랙 컨텐츠의 아카이브를 찬찬히 뒤적였습니다. 그러다 유독 서로 다른 시기에 쓰였으면서도 마치 하나의 실로 꿰어놓은 것처럼 이어지는 글 다섯 편을 발견했습니다.

읽기에 관한 글, 인간의 생각 체계에 관한 글, 손으로 문장을 쓰는 일에 관한 글, 의도적인 게으름과 쉼에 관한 글, 그리고 점토를 손으로 일일이 빚어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장인들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겉보기에는 다루는 주제도, 등장하는 인물도 완전히 다릅니다. 하지만 그 글들이 가리키는 종착지는 놀랍도록 정확하게 한 지점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AI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가장 두려워해야 할 일로 '**AI가 인간의 지능을 아득히 뛰어넘어 인간을 지배하는 디스토피아'**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훨씬 더 빠르고 조용하게 닥쳐오는 위협은 그런 SF 영화 같은 장면이 아닙니다.

인간이 굳이 머리를 쓰지 않아도 모든 일이 매끄럽게 굴러가는 이 안락한 환경에, 우리 스스로가 너무 빠른 속도로 길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힘을 조금씩 덜어내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는 질문을 던질 줄도 모른 채 화면이 내어주는 답변만을 수동적으로 받아먹는 존재로 굳어지게 됩니다.

오늘은 이 다섯 편의 기록이 던져준 단서들을 바탕으로, AI라는 압도적인 도구 한가운데서 우리의 고유한 사고력을 지켜내기 위한 세 가지 질문과 원칙을 깊이 있게 짚어보려 합니다.


생각은 답을 얻는 능력이 아니라, 질문을 만드는 힘이다

첫 번째로 돌아볼 이야기는 최승필 작가가 말하는 '읽기'와 문해력의 본질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문해력이라는 단어를 단순히 글자를 막힘없이 읽거나, 한자어나 전문 용어의 뜻을 많이 알고 있는 어휘력의 문제로 치부합니다. 하지만 그는 문해력을 전혀 다른 층위에서 정의합니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수많은 맥락과 긴 논리의 타래를, 뇌 안에서 놓치지 않고 끝까지 붙들고 유지하는 힘. 그것이 바로 문해력이라는 겁니다.

한 걸음 더 들어가면 문해력은 독해 기술이 아니라 사고력 그 자체와 직결됩니다.

긴 호흡의 책이나 심도 있는 글 한 편을 제대로 읽는 상황을 상상해 보십시오. 우리는 단순히 망막으로 활자를 스캔하는 게 아닙니다. 첫 장에서 저자가 던진 전제를 머릿속에 기억해 둬야 하고, 세 번째 장에 이르러 등장한 새로운 논거가 앞서 나온 문제의식과 어떻게 부딪히는지 끊임없이 대조해야 합니다. 저자가 중간에 던진 사소해 보이는 예시 하나가 왜 하필 이 타이밍에 배치되었는지 의도를 파악하고, 앞 문장과 뒷 문장 사이의 보이지 않는 인과관계를 뇌 안에서 쉴 새 없이 조립합니다.

즉, 읽는 행위는 눈으로 정보를 빨아들이는 수동적인 과정이 아니라, 뇌가 에너지를 극도로 소모해가며 자기만의 3차원 인지 구조물을 머릿속에 축조하는 치열한 노동입니다.

그런데 최근 우리가 일상에서 정보를 대하는 방식을 보면, 이 축조 과정 전체를 통째로 건너뛰고 있습니다.

수십 페이지짜리 기획서나 논문을 맞닥뜨리면 본문을 찬찬히 따라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요약본부터 찾습니다. 30분짜리 심도 있는 인터뷰나 다큐멘터리는 1분 미만의 숏폼 클립으로 소비합니다. 긴 뉴스 기사는 헤드라인과 자극적인 베스트 댓글 몇 개만 훑어본 뒤 내용을 다 안다고 착각합니다.

여기에 생성형 AI가 등장하면서 이 지름길은 고속도로처럼 넓어졌습니다. AI 창에 글을 집어넣고 엔터 한 번만 치면 1초 만에 깔끔한 개조식 문장으로 세 줄 요약이 떨어집니다. "핵심만 뽑아줘",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게 쉬운 단어로 바꿔줘", "결론만 말해줘".

효율성의 관점에서는 의심할 여지 없이 혁명적입니다. 하지만 이 편리함이 우리의 인지적 기본값이 되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최승필 작가는 아주 탁월한 비유를 듭니다. AI가 벽돌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속도로 완벽하게 쌓아 올려 주는 기계라면,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능력은 바로 그 건물의 전체 설계도를 그릴 줄 아는 힘이라는 겁니다.

앞으로 AI가 데이터를 크롤링하고, 수려한 문장을 지어내며, 지저분한 자료를 보기 좋게 정돈하는 능력은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거대한 연산 능력 앞에서 인간이 쥐고 있어야 할 고유의 역할은 무엇이겠습니까.

이 벽돌을 왜 여기에 쌓아야 하는지, 지금 우리가 지으려는 건물이 병원인지 감옥인지 미술관인지, 현재 저 매끄러운 답변 안에서 의도적으로 누락되었거나 배제된 관점은 무엇인지, 이 문제가 애초에 잘못 정의된 것은 아닌지 따져 묻는 일입니다.

이러한 근원적인 질문은 결코 요약본 몇 줄을 읽는다고 해서 머릿속에서 번쩍 떠오르지 않습니다. 복잡하고 지루하며 때로는 모순으로 가득 찬 긴 텍스트를 끝까지 부여잡고 끙끙 앓아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내면의 체계가 있어야만 비로소 유의미한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정보가 빛의 속도로 압축되는 시대일수록, 아무것도 생략하지 않은 긴 글을 느리게 읽어내는 사람의 가치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AI는 당신이 던진 질문에 언제든 그럴듯하게 답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질문을 던져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는 그 누구도 아닌 당신의 생각 근육에 달려 있습니다. 앞으로 벌어질 사람 사이의 지적 격차는 누가 더 많은 지식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깊고 정교한 질문을 설계할 수 있느냐에서 철저하게 갈릴 것입니다.


AI의 첫 번째 답을 믿는 순간, 인간의 생각은 멈춘다

두 번째 이야기는 행동경제학의 거두이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출발합니다.

카너먼은 인간의 뇌가 세상을 인지하고 결정을 내릴 때 두 가지 전혀 다른 인지 시스템을 사용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직관적이고 각각의 자극에 무의식적으로 즉각 반응하는 빠른 생각, 바로 '시스템 1'입니다. 길을 걷다 날아오는 공을 순간적으로 피하거나, 상대방의 얼굴 표정만 보고도 화가 났음을 즉시 알아차리는 본능의 영역입니다. 반면에 복잡한 계산을 수행하고, 여러 대안의 득실을 꼼꼼히 따지며, 충동을 억제하고 논리적 오류를 검증하는 느리고 피로한 이성의 영역이 바로 '시스템 2'입니다.

인간의 뇌는 진화론적으로 에너지를 극도로 아끼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뇌는 몸무게의 2%에 불과하지만 전체 에너지의 20%를 소모합니다. 따라서 인간 본성은 시스템 2를 작동시키는 것을 본능적으로 꺼립니다. 깊게 생각하고, 의심하고, 따져 묻는 일은 생물학적으로 피곤하고 고통스러운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적당히 그럴듯한 핑계나 답을 발견하면 서둘러 시스템 2의 전원을 내리고 시스템 1의 자동 운항 모드로 전환해 버립니다.

AI의 등장은 인간의 이 게으른 인지적 습성을 극단적으로 증폭시켰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기획서를 쓰거나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면 발품과 손품을 팔아야 했습니다. 도서관에 가거나 검색 엔진의 수많은 페이지를 넘기며 논문과 인터뷰, 통계 자료를 일일이 대조했습니다. 자료 A와 자료 B의 수치가 서로 다르면 도대체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지 고민해야 했고, 출처의 신뢰성을 따져 물으며 스스로 머릿속에서 논쟁을 벌였습니다. 그 골치 아픈 피로감 속에서 비로소 '생각'이라는 것이 잉태되었습니다. 시스템 2가 강제로 풀가동되었던 셈입니다.

지금은 어떤 풍경이 펼쳐집니까.

AI 프롬프트 창에 질문 하나를 던지면, 3초도 지나지 않아 유려한 문장과 완벽한 접속사로 포장된 답변이 모니터를 가득 채웁니다. 문맥의 흐름도 훌륭하고, 논리적 구성도 겉보기에는 아무런 흠결이 없어 보입니다. 그 순간 우리의 뇌 속 시스템 1이 부드럽게 속삭입니다.

"완벽하네. 이 정도면 충분히 훌륭해. 복잡하게 더 고민하지 말고 여기서 끝내자."

바로 이 지점에서 인간의 사고는 정확하게 작동을 멈춥니다.

AI가 명백한 헛소리나 거짓 정보를 내놓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답변이 너무나 그럴듯하고 매끄럽기 때문에 의심의 여지를 지워버리는 겁니다. 인간의 뇌가 편안함이라는 덫에 걸려 스스로 비판적 사고의 스위치를 내려버리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저는 실무에서 AI를 다룰 때 가장 중요한 역량이 결코 화려한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스킬이나 명령어의 기술적인 조합에만 머물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격차를 만들어내는 것은 AI가 모니터에 토해낸 첫 번째 답변을 물고 늘어지는 집요한 의심의 힘입니다.

"이 논리의 숨겨진 전제는 무엇인가?"

"이 통계나 주장이 들어맞지 않는 극단적인 반례는 어디에 있는가?"

"만약 이 가정이 완전히 틀렸다면 어떤 결론이 도출되는가?"

"이 텍스트가 현실의 물리적 공간에서도 그대로 작동할 것인가?"

모니터 바깥 현실의 물리적 맥락. 출처: Assemblies Unlimited

이를 아주 명쾌하게 보여주는 흥미로운 비즈니스 사례가 나옵니다.

어떤 브랜드가 미국 오프라인 리테일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패키지 디자인 방향성을 AI에게 질의했습니다. AI는 방대한 글로벌 트렌드 데이터와 소비자 행동 패턴을 분석해, 아주 세련되고 설득력 있는 컨셉 문구와 시각적 가이드라인을 순식간에 뽑아냈습니다. 화면 안에서만 보면 더 이상 손댈 곳이 없는 정답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 브랜드의 담당자들은 그 매끄러운 텍스트를 그대로 따르지 않았습니다. 직접 비행기를 타고 미국 현지의 타깃 매장으로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현장을 확인했을 때 비로소 진짜 문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매장의 천장 조명이 제품 진열대를 어떤 각도로 내리비추고 있는지, 자신들의 제품이 실제로 놓이게 될 매대의 높이가 성인 눈높이인지 발목 부근인지, 바로 양옆에 놓인 경쟁사 제품들의 용기 형태와 메인 컬러가 무엇인지.

그 현장의 거친 물리적 맥락, 텍스트로는 절대 전달되지 않는 공기의 질감과 공간의 제약은 모니터 화면 안의 정제된 데이터만으로는 절대 파악할 수 없는 영역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실천적 태도 하나를 기억해야 합니다.

AI가 내놓는 결과물은 결코 채점표가 매겨진 '정답'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사고를 시작하기 위해 던져진 거친 '초안'에 불과합니다.

질문을 던져 첫 번째 결과물을 받아내는 단계까지는 AI에게 전적으로 기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물을 검증하고, 모순을 찾아내며, 현실이라는 복잡계에 부딪혀 다듬어내는 마지막 판정의 몫은 온전히 인간의 시스템 2가 감당해야 합니다.

AI가 답을 내놓았을 때 비로소 안도하며 생각을 멈추는 사람이 있는 반면, AI의 답을 신호탄 삼아 비로소 치열한 검증과 사유를 시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의 밀도와 삶의 궤적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질 것입니다.


인간의 경쟁력은 지독한 비효율 속에서 태어난다

세 번째 이야기는 다소 역설적인 방향으로 시선을 돌립니다. 바로 '글쓰기'의 고통, 대문호 헤르만 헤세가 실천했던 '무용함의 시간', 그리고 전 세계인을 사로잡은 클레이 애니메이션의 명가 '아드만 스튜디오'의 이야기입니다.

먼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나 던져보겠습니다.

지금 AI는 시와 소설, 칼럼과 보도자료를 믿기지 않는 수준으로 써 내려갑니다. 문법적 오류가 전혀 없는 것은 물론이고, 특정한 작가의 문체를 흉내 내거나 문학적인 은유를 구사하는 것도 식은 죽 먹기입니다. 그렇다면 이토록 완벽한 텍스트 생성기가 존재하는 세상에서, 인간이 여전히 서툰 문장으로 직접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요? 시간 낭비에 불과한 일일까요?

『글쓰기 생각쓰기』를 다룬 롱블랙의 글에서 정지우 작가는 정곡을 찌르는 통찰을 제시합니다.

AI는 세상에 존재하는 수억 개의 텍스트 데이터를 조합하고 통계적으로 가장 확률 높은 어휘들을 이어 붙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지난겨울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겪었던 뼈아픈 좌절감,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낼 때 목구멍으로 삼켰던 울음의 무게, 수없이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끝내 포기하지 못했던 그 먹먹한 집착과 온도는 오직 당신이라는 생명체만이 통과해 낸 고유한 시간입니다. AI는 그 시간을 대신 살아줄 수 없습니다.

글쓰기라는 것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타자기 놀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의 삶에서 건져 올린 구체적인 경험과 불완전한 감정을 언어라는 그릇에 담아내며, 세상을 바라보는 나만의 시선을 단련하는 과정입니다. 생각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삶을 바꾸고 세상을 조금이나마 진전시키는 진짜 깊은 생각은 결코 정제된 데이터의 알고리즘만으로 탄생하지 않습니다.

진흙탕 속에서 넘어지고 깨져본 쓰라린 경험, 타인의 일그러진 표정을 마주하며 느꼈던 당혹감, 손으로 직접 물건을 만들다 실패해서 버렸던 수많은 시간, 그리고 답을 도무지 알 수 없어 몇 날 며칠을 머릿속에 질문을 얹어둔 채 끙끙 앓았던 그 고통스러운 공백기 속에서만 비로소 고유한 사유가 싹을 틔웁니다.

이 지점에서 헤르만 헤세의 삶의 태도는 우리에게 커다란 울림을 줍니다. 헤세는 자신의 일상 속에 의식적으로 '생산성이 전혀 없는 무용한 시간'을 지켜냈습니다.

하루 중 일부러 목적지 없이 산책로를 걷고, 길가에 피어난 이름 모를 들꽃을 한참 동안 묵묵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여행지에 도착해서도 남들이 다 찾아가는 유명한 랜드마크 대신 구석진 곳에 있는 작은 연못 앞에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밤이 찾아와 마음 밑바닥에서 과거의 부끄러운 기억이나 후회가 떠오를 때도, 스마트폰을 켜서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대신 그 어스름한 감정의 파도를 가만히 견뎌냈습니다.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철저하게 비생산적이고 낭비적인 시간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헤세는 바로 그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정적의 여백 속에서, 낮 동안 어지럽게 흩어져 있던 삶의 파편들이 비로소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문학적 영감으로 변모한다고 믿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까.

AI와 스마트 기기는 우리 일상에 존재하는 단 1초의 틈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지하철을 기다리는 짧은 순간에도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쇼츠를 넘겨보고, 출퇴근길을 걸으면서도 귀에는 배속으로 설정된 팟캐스트가 끊임없이 흘러나옵니다. 조금이라도 궁금하거나 답답한 문제가 생기면 그 상태를 1분도 견디지 못하고 즉각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하거나 AI에게 묻습니다.

과거에는 답을 몰라 가슴속에 품고 다니며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묵혀두던 그 귀한 질문들을, 이제는 단 10초 만에 인스턴트 답변으로 해치워버립니다.

하지만 인간의 창의성이란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답을 즉시 알지 못해 쩔쩔매는 시간' 속에서 자라납니다. 결핍이 있어야 갈망이 생기고, 막막함이 있어야 다른 각도에서 문제를 바라보려는 뇌의 회로가 꿈틀거리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물리적 제약과 손의 감각이 빚는 창의성. 출처: Pickpik

이러한 비효율의 역설을 가장 극적으로 증명하는 집단이 바로 '월레스와 그로밋', '치킨 런'을 탄생시킨 영국의 아드만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입니다.

지금 할리우드는 물론 전 세계 영상 업계는 AI 생성 도구와 최첨단 3D 그래픽을 도입해 작업 시간을 줄이느라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프롬프트 몇 줄만 입력하면 몇 초 만에 실사 수준의 웅장한 영상이 렌더링 되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아드만의 장인들은 여전히 차가운 작업실에 모여 앉아, 점토 덩어리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인형을 빚고 있습니다. 영화 속 캐릭터가 눈을 한 번 깜빡이고 팔을 들어 올리는 1초의 장면을 완성하기 위해, 점토 인형의 관절을 1밀리미터씩 미세하게 꺾어가며 카메라로 수십 장의 스틸사진을 찍습니다. 수십 명의 애니메이터가 일주일 내내 뼈를 깎는 노동을 해도 건져낼 수 있는 분량은 고작 2~3초에 불과합니다.

자본주의와 효율성의 잣대로만 평가한다면 이보다 더 미련하고 시대착오적인 방식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드만의 창작자들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제약과 한계야말로 창의성의 가장 위대한 원천이다."

무엇이든 마우스 클릭 한 번으로 무한히 만들어낼 수 있는 무제한의 자유가 주어지면, 인간은 역설적으로 가장 진부하고 평범한 클리셰를 선택하게 됩니다. 하지만 점토라는 다루기 까다롭고 무거운 물리적 재료, 손가락 지문이 묻어나고 조금만 조명을 세게 쬐어도 녹아내리는 극단적인 한계 속에 갇히게 되면, 인간의 뇌는 그 좁은 제약 안에서 어떻게든 문제를 돌파하기 위해 상상력의 한계를 쥐어짜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명견 캐릭터 '그로밋'의 탄생 비화가 바로 그 증거입니다. 원래 기획 단계에서 그로밋은 복잡한 입 모양을 통해 대사를 읊는 수다스러운 개였습니다. 하지만 점토로 입을 일일이 빚어 대사의 발음에 맞추는 작업이 물리적으로 너무나 버겁고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제작진은 고심 끝에 그로밋의 입을 과감히 없애버리기로 결정했습니다. 말을 할 수 없게 되자, 제작진은 캐릭터의 감정을 오직 '눈썹의 미세한 움직임'과 '귀의 각도'만으로 표현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제약에 직면했습니다.

그 지독한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고민하고 또 고민한 끝에, 그 어떤 정교한 대사보다 더 깊은 뉘앙스를 풍기는 그로밋 특유의 냉소적이면서도 따뜻한 눈빛 연기가 완성된 것입니다.

기술이 인간의 모든 물리적 한계와 시간적 비용을 소거해 줄 때 창의력이 폭발할 것이라는 우리의 믿음은 착각일 수 있습니다. 무언가가 마음대로 풀리지 않아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끙끙 앓는 그 비효율의 시간이야말로, 그 어떤 인공지능도 흉내 낼 수 없는 인간만의 오리지널리티가 잉태되는 유일한 토양입니다.


추가) 가장 빠르고 매끄러운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느린 인간'의 감각이다

지금까지 나눈 이야기들을 차분히 엮어보겠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어떤 면에서 보면 생각하고 계산하며 작업하는 데 들어가는 신체적, 인지적 비용을 줄여나가는 기술 발전의 역사였습니다. 돌도끼에서 활자로, 계산기에서 컴퓨터로, 그리고 이제는 인간의 사고 과정 자체를 모방하는 거대 언어 모델에 이르렀습니다. 마침내 우리는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지식을 즉시 소환하고 가공할 수 있는 경이로운 낙원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바라던 극단의 효율에 도달한 바로 지금, 역설적이게도 '스스로 깊게 생각하는 능력' 그 자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드물고 값비싼 희소 자원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누구나 몇 초 만에 평균 이상의 그럴듯한 기획서와 문장을 뽑아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면, 화면 밖으로 걸어 나온 그 사람에게 남아있는 알맹이는 도대체 무엇이겠습니까. AI가 건네준 답안지를 치웠을 때, 그 사람의 머릿속에 여전히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는 고유한 논리와 시선은 어디에 있습니까.

생각의 주권을 지키는 도구들. 출처: StockCake

저는 이 자리에서 AI를 멀리하고 과거의 아날로그 방식으로 회귀하자는 낭만주의를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우리는 AI를 지금보다 훨씬 더 영리하게, 더 적극적으로, 더 치열하게 활용해야 합니다.

다만, 결코 타협해서는 안 되는 단 하나의 엄격한 내면의 경계선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자료를 긁어모으고, 흩어진 데이터를 분류하며, 지저분한 문장을 정돈하고, 지루한 반복 작업을 처리하는 기계적인 노동은 AI에게 아낌없이 넘겨주십시오. 하지만 그 결과물 중에서 무엇이 진짜 가치 있는 본질인지 가려내는 일, 논리의 틈새에서 풍기는 미세한 기만과 모순을 잡아내는 일, 내가 속한 현실의 물리적 공간에 이 아이디어를 어떻게 뿌리내리게 할 것인지 결단하는 일, 그리고 이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나는 궁극적으로 세상에 어떤 목소리를 내고 싶은가"를 선택하는 주권만큼은 결코 기계에게 넘겨주어서는 안 됩니다.

앞으로 우리가 마주할 세상에서 진짜 파괴적인 경쟁력을 갖는 사람은, AI 도구를 다루는 손가락이 남들보다 3초 더 빠른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AI가 번쩍이는 속도로 매끄러운 결과물을 모니터에 토해낸 바로 그 순간, 거기에 쉽게 안주하지 않고 화면을 응시하며 턱을 괴고 10분이고 한 시간이고 묵묵히 '더 오래 생각할 줄 아는 사람', 바로 그 '느린 인간'이 최후의 차이를 만들어낼 것입니다.

오늘 영상을 끄고 자리에 앉으셨을 때, 여러분의 일상 속에서 아주 작은 지적 실험 하나를 시도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내일 아침 출근해서 업무를 시작할 때, 혹은 개인적인 호기심이나 고민이 생겼을 때, 관성적으로 AI 브라우저 창부터 열지 마십시오. 대신 딱 5분만 먼저 스마트폰과 모니터를 끄고 백지와 펜을 꺼내보십시오.

내가 지금 풀려는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내 머릿속에 들어있는 생각의 단편은 무엇인지 단 세 줄만 거칠게 손으로 직접 적어보는 겁니다. 나의 불완전한 생각의 뼈대를 종이 위에 먼저 세워두는 것입니다.

그렇게 5분의 사유를 거친 뒤에 비로소 AI를 켜고 질문을 던져보십시오.

그 순간 AI는 여러분의 뇌를 무력화시키는 위험한 마약이 아니라, 여러분이 세운 생각의 성벽을 끊임없이 시험하고 단련해 주는 가장 날카로운 훈련 파트너로 변모할 것입니다. AI가 내 생각을 대신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AI로 하여금 내 생각과 치열하게 맞부딪히게 만드는 경험. 같은 도구를 쓰더라도 그 결과물과 여러분 뇌에 남는 근육의 밀도는 차원이 다를 것입니다.

이매진댓은 결국 화면 너머의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을 딛고 서서 현실의 진짜 문제를 집요하게 풀어내는 살아있는 인간들의 이야기에 주목합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탁월한 문제 해결은 언제나 매끄럽고 편리한 정답에서 출발하지 않았습니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스스로의 뇌로 끝까지 밀어붙인 단단한 질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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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진이 안하면 후회할 AI 성과 검토 방법
AI 리서치2026.10.24

경영진이 안하면 후회할 AI 성과 검토 방법

AI 성과 설문과 대시보드는 체감과 사용량을 보여줄 뿐, 일이 실제로 바뀌었는지는 보여주지 않습니다. 인류학자 니콜라 노바가 남긴 관찰 연습을 AI 전환을 맡은 경영진의 현장 점검법으로 옮겨 봤습니다. 맥킨지·BCG·METR 데이터와 도요타, 레고, 클라르나, 에어캐나다 사례, 그리고 4주 관찰 프로토콜을 담았습니다.

TTY KIM
AI와 인간관계 - 손절이 대세인 이유
AI 리서치2026.10.22

AI와 인간관계 - 손절이 대세인 이유

수도권 25~39세 미혼 열 명 중 일곱은 외롭다고 답하지만, SNS에는 손절 콘텐츠가 넘친다. 한국 생성형 AI 이용자의 68.8%는 AI에게 마음도 털어놓고, 맞장구치는 AI는 화해하려는 마음을 줄였다. 『손절사회』의 진단에서 출발해 외로움, 치유 문화, AI 동반자, 관계의 건강 효과를 데이터로 따라갔다.

TTY KIM
AI/데이터로 본 외국인의 눈 - 한국은 일하기 좋은나라 일까?
AI 리서치2026.10.18

AI/데이터로 본 외국인의 눈 - 한국은 일하기 좋은나라 일까?

외국인 호감도는 82.3%로 조사 이래 최고지만, 한국에 사는 외국인의 만족도는 46개국 중 44위였다. AI 특허·로봇·HBM 지표에선 세계 최상위인데 AI 인재 순유입은 OECD 하위권이다. 해외 지표 20여 개를 모아 외국인이 보는 한국의 세 얼굴을 데이터로 따라갔다.

TTY KIM